여행기

천안문

유한철 2008. 6. 27. 21:14

 

 

 

 

 

 

 

 

 

중국 민주화의 상징,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 : 티엔안먼광창)


북경 시내에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 개의 인상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역사/혁명 박물관, 서쪽은 인민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예로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다.

천안문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명 영락(永樂)연간인 1417년에 지어졌으며, 옛날에는 황제가 사는 성의 정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렸다가 청대에 개조된 후부터는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3.7m 높이의 천안문은 황제의 대형 의식이나 새 군대 파견을 위한 행사를 위해 이용되었다. 황금색 기와 지붕과, 높이 추켜든 추녀, 그림과 조각으로 단장된 대들보, 그리고 주홍색의 웅장한 기둥들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하얀색 대리석 위에 새겨진 조각들은 하늘의 평화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

천안문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 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점차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난사와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